춘추전국시대(기원전 770~476년) 말기에 오나라 왕 부차(夫差)가 그의 아버지
합려(闔閭)의 묘역으로 조성한 곳이다.
그를 매장한 지 3일째 되는 날에 하얀 호
랑이가 나타나서 무덤을 지켰다는
전설 때문에 호구(虎丘)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.
20ha 정도의 광대한 면적 내에 여러 가지 명소가 자리하고 있는 호구
의 첫째 볼거리는 호구산 정상의 운암사(雲岩寺) 탑이다.
높이 47.5m인 8각형7층탑인데,
약 15도 기울어져 있는데, 눈으로 보기에도 기울어진 경사가 느껴진다.
말하자면 중국판 피사탑이다.
현존하는 중국 최고(最古)의 벽돌탑으로 961년에 완성된 것.
호구산 입구 오른쪽에 있는 시검석(試劍石)은 오왕 합려(闔閭)가 천
하의 명검을 시험해 보기 위해 시험삼아 잘랐다는 전설이 있는 돌로,
실제로 가운데가 둘로 쪼개져 있다.
그곳에서 좀더 올라가면 넓게 펼쳐진 돌이 있는데,
이곳이
1,000명이 앉아서 승려의 설법을 들었다고 하는 천인석(千人石)이다.
그 외에도 소 동파가 즐겼다는
샘물인 제삼천(第三泉) 이나 오왕 합려의 유체와 함께 3,000여
개의 검이 묻혔다고 하는 검지(劍池) 등이 있다.
검지에서는 진시황이나 손권(孫
權)도 명검을 발굴하려고 노력했지만 단 1개의 검도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.